content="user-scalable=no, initial-scale=1.0, maximum-scale=1.0, minimum-scale=1.0, width=device-width"> 위니코트와 라캉의 정신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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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니코트와 라캉의 정신 분석

by 작달비100 2024. 7. 23.

정신분석학은 20세기 전반 프로이트가 기초를 세운 뒤 여러 차례 수정되었다. 창의성과 그 산물은 철학자와 신화 작가들의 관심을 끈다는 이유로 꾸준히 정신분석학자들에게 매력적인 관심 대상이 되어 왔다. 미술은 휴머니즘적 성격을 가지고 있고 그 원천이 인간의 상상력 속에 있기 때문에 자연히 정신분석학의 탐구 대상이 된다. 후기 프로이트파의 관점에서 창의성과 미술에 대해 저술한 중요한 정신분석학자 두 사람을 꼽자면 영국의 위니코트(D. W. Winnicott)와 프랑스의 자크 라캉(Jacques Lacan)을 들 수 있다. 

 

1. 위니코트, 창조성과 전이 대상

위니코트는 영국의 탁월한 대상관계(Object Relations) 정신분석학자이며 소아과 의사로서 창의성의 근원을 멀리 전 오이디푸스(pre-oedipal) 콤플렉스 시기의 모자 관계까지 거슬러 올라가 찾는다. 위니코트는 유아들은 자폐증이 아니라면 생후 4개월에서 12개월 사이에 특정 대상에 집착하는 발달 과정을 겪는다는 점을 관찰하고 이 과정에서 집착하게 되는 물체를 '전이 대상(transitional object)'이라고 불렀다. 이것은 담요 모서리나 <피너츠> 만화에 나오는 라이너스처럼 담요 전체에서부터 고무젖꼭지, 곰 인형, 낡은 헝겊 등에 이르기까지 어떤 것이나 이것이 될 수 있다. 전이 대상은 발달상 유아가 엄지손가락, 발가락, 머리카락 등 자기 신체의 일부에 자기애적으로 집착하는 현상보다 나중에 나타난다. 위니코트는 또한 유아가 놀고 노래하고 중얼거리는 것, 낮이나 밤에 꿈을 꾸는 것까지도 '전이 현상들'이라고 보았다. 전이 대상과 전이 현상들은 모두 상징화의 목적에 도움이 된다. 이들은 유아가 어머니에게서 떨어질 수 있도록 하며(대개 잠잘 때) 어떤 면에서는 어머니 역할을 한다. 이들은 특별한 대상이나 행동보다 공간을 나타내고 그래서 어머니와 아이에게 다르게 인식된다. 어머니는 이를 아이와 별개로 여기지만 아이는 자기의 일부라고 생각한다. 라이너스는 자기 담요를 떼어놓으면 자아가 공격받는 듯한 불안을 느낀다. 그는 담요를 다시 갖게 될 때까지 공포에 떤다. 이러한 이유로 위니코트는 '현명한 어머니'는 전이 대상을 상관치 않고 내버려두어 마침내 아이가 그 물건에 대해 흥미를 잃어버리게 한다고 결론지었다. 

 

위니코트에게 전이 대상과 전이 현상들이 중요한 의미가 있는 것은 이들이 나중에 창조적 작업을 할 때 문화적 기초가 되기 때문에다. 그러므로 프로이트처럼 위니코트도 인간의 발달을 연속적 과정이라고 생각하고 유년기의 사건들이 성인이 되었을 때의 성격을 형성하 기초가 된다고 보았다. 전이 대상은 항상 전이적 양상을 보이는 모든 예술의 패러다임이 된다. 예컨대 종교미술은 사람들과 사람이 숭배하는 신들 사이의 전이를 형성하며 모든 문화는 이러한 전이를 자기 나름대로 표현한다. 

<자크 라캉> 위키피아

2. 종교미술의 전이적 성격

신들이 대개 높은 곳에 올라 하늘이나 산꼭대기 같은 곳에 산다고 믿는 보편적인 개념은 사람들을 신과 연결해 줄 전이적 건축을 만들게 하였다. 일례로 메소포타미아의 지구라트(ziggurat)는 신들이 거주할 장소를 제공하는 산의 기능을 한다. 메소포타미아의 평탄한 지역에서 이 구조물은 특히 도시에 사는 인간 대중에게 신을 보다 가까이 느끼게 한다. 이집트의 피라미드는 꼭대기에 금을 씌워서 가장 높은 부분이 태양신과 연결되도록 했다. 삼각형의 측면을 따라 내려오는 이 금은 태양광선을 모방해 디자인되었으며 이로써 땅과 하늘이 이어지고 파라오의 무덤을 통해 지상의 삶과 영원한 삶이 연결된다. 고딕 성당을 지은 사람들은 그 탑과 뾰족지붕의 치솟은 수직면들을 통해 높이를 강조했다. 그 건물들은 신과 천국을 향해 그야말로 솟아올랐을 뿐 아니라 지구라트와 피라미드처럼 다른 차원의 존재를 시각적으로 상기시키는 것이었다. 신전과 교회당은 예배자의 물질적인 외부 세계와 신상을 담고 있는 내부 성역 사이의 전이적 상태를 표현한다. 이집트의 거대한 기둥 수백개가 있는 다주식(多柱式) 건축의 회랑은 입구로부터 가장 신성한 장소를 향해 들어감에 따라 어떤 신비감을 준다. 그리스 신전에서는 예배 자체가 밖에서 이루어졌으며 감실(naos)에 있는 예배용 조상에 구현된 이미지에는 사제만이 접근할 수 있었다. 그리고 기독교 교회들은 성가대석이나 후진(apse) 또는 측실의 맨 안쪽 구내를 예식에 행해지는 제단으로 마련해 간직하고 있다. 외부에서 내부로 향하는 이러한 건축적 전이는 마치 숨겨진 힘의 근원에 접근하는 듯이 점진적으로 경이감을 증가시킨다. 이 외부에서 내부로 향하는 건축 '여로(旅路)'를 거꾸로 하면 내부에서 외부로, 어머니의 몸에서 바깥 세계로 나가는 유아의 발달 '여로'와 일치한다. 아이가 어머니에게서 떨어질 때는 언제나, 특히 어두워지는 밤에는 전이 대상의 도움을 받아야만 한다. 

3. 미술 재료의 전이적 성격

미술은 비정형의 재료에서 형태를 만들어낸 것이거나 어떤 경우에는 이미 형성된 재료를 가지고 재형성한 것이다. 형상화라는 개념 즉 형태를 만듦으로써 무언가 이룬다는 개념은 미술의 전이적 성격의 한 측면이다. 이것은 레오나르도가 벽에서 우연한 형상을 보고 쓴 글에서 말하고자 한 것이나 흐르는 물을 여성의 머리카락과 닮게 그리면서 표현한 것과 관계가 있다. <모나리자>에서 모나리자 자신은 뒤에 있는 배경의 굽이진 산과 바위가 있는 풍경에 대한 은유라고 해석되어 왔다. 그렇게 보면 그녀는 이 화가가 바위를 뼈에 흙을 살에 강과 바다를 순환계통에 결부시켰다는 점을 나타내는 것이다. 전통적으로 미술 작품은 흙에서 나온 천연 재료로 만들었다. 이 재료들은 미술가의 생과 완성된 작품 사이를 중재하는 역할을 하므로 전이적 성격을 갖는다. 아테나와 아라크네의 신화에서는 재료가 염색된 실인데 이것이 직조되어 장면들을 이루었다. 그러므로 실은 그 경쟁자들이 전달하려는 생각과 그들이 창조하는 형상들 사이에 전이가 성립되도록 한다. 미술가들은 자기가 쓸 재료를 선택하기 때문에 선택된 재료는 그 작가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다고 볼 수 있다. 비평가이며 조각가인 시드니 가이스트(Sydney Geist)는 "재료에 대한 애정은 심리학적인 것이지 조각적인 사항이 아니다."라고 했다. 그는 브랑쿠지가 청동에 애착을 가졌던 점을 지적하며 <공간의 새>를 작가 자 모습이라고 해석한다. 가이스트에 의하면 그 작품은 아버지 같은 태양을 향해 서 있는 상징적 남근으로, 그를 학대했던 무지한 자기 아버지와 맞서고 싶은 브랑쿠지의 소망을 반영한다. 청동을 택해 극도로 윤을 냄으로써 브랑쿠지는 황금처럼 반짝이는 표면을 만들고 그 광택이 태양과 경쟁할 수 있도록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