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ntent="user-scalable=no, initial-scale=1.0, maximum-scale=1.0, minimum-scale=1.0, width=device-width"> 에드바르트 뭉크(Edvard Munch, 1863-1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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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바르트 뭉크(Edvard Munch, 1863-1944)

by 작달비100 2024. 9. 24.

반고흐와 함께 뭉크는 20세기 표현주의의 선구자로 꼽힌다. 표현주의는 20세기 초의 가장 중요한 미술 운동 중 하나로, 자연에 충실한 태도를 버리고 내면 깊숙한 곳에 있는 감성을 표현하고자 한 미술이다. 뭉크는 노르웨이 출신의 표현주의 화가이자 판화 작가이다. 노르웨이의 '1000크로네' 화폐에 얼굴이 새겨질 정도로 뭉크는 노르웨이를 대표하는 국보급 화가이며 국민적인 화가이다. 뭉크의 대표작 '절규'는 현대인의 불안을 극적으로 상징화하여 전 세계적으로 유명해졌다. 강렬한 색채와 장식적인 환영의 이미지가 그의 깊은 내면의 고뇌와 연결되어 있으며 가장 내밀한 감정을 표현하려는 욕구에서 나온 것들이다. 

 

에드바르트 뭉크 '절규' /사진 위키미디어

 

1863년 노르웨이의 군대 의사인 아버지와 예술적 소양을 갖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뭉크는 그의 나이 5살에 폐결핵으로 어머니를 잃었다. 누이도 그가 열여섯 살이 됐을 때 죽었다. 이 두 가지의 쓰라린 경험은 그에게 깊은 상처를 남겼으며 성인이 되어서도 그가 정신병을 앓고 전기 충격 치료를 받아야 했던 이유였다. 1899년 뭉크의 작품 <죽은 어머니>는  그가 겪은 절망이 그대로 담겨있다. 침대에 한 여성이 숨을 거둬 창백한 얼굴로 누워 있고 엄마의 죽음을 목격한 아이는 모든 것을 부정하듯 자기 귀를 막고 '절규'의 남자처럼 정면을 바라본다. 뭉크는 죽음 이후의 남겨진 이의 감정에 초점을 두었다. 엄마가 죽었다는 사실을 외면하는 듯한 아이는 뭉크의 누이이자 뭉크 자신을 가리킨다. 가족의 연이은 죽음으로 뭉크는 우울증에 시달렸으며 병약했고 사랑에도 실패하여 평생 독신으로 살았다. 태어나던 날부터 공포, 슬픔, 죽음의 천사가 자기 곁에 늘 서 있는 것 같다고 고백한 뭉크는 그럼에도 '희망'의 끝자락을 붙잡고 삶을 포기하지 않았다. 

 

뭉크는 그의 곁을 지켜준 이모를 통해 그림을 만났다. 18살에 아버지의 뜻을 따라 기술학교에 가지만 구원과도 같았던 그림에 대한 열망을 끊을 수 없어서 기술학교를 그만두고 국립 왕실 미술학굘 입학한다. 그는 현재 오슬로인 크리스티아니아에서 미술을 공부하고 오슬로에 다시 정착하기 전까지 독일, 이탈리아, 프랑스를 여행했다. 탁월한 재능을 보여 프랑스 유학생으로 선발됐으며 파리를 방문한 1889년과 1892년 사이에 그는 반고흐의 그림에 흠뻑 빠져들었다. 고갱과 여타 상징주의자들, 그리고 오딜롱 르동의 작품들에도 익숙해졌다. 고흐의 작품을 좋아한 뭉크는 여러 차례 오마주 했으며 '별이 빛나는 밤'이 대표적이다. 

 

뭉크는 자신만의 고유한 미술 세계를 만들어 낸 화가이다. 그의 그림 안에는 소용돌이치는 선들과 눈에 거슬리는 색들이 기이한 몽환경 같은 이미지들을 형성한다. 그는 계시적인 어투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예술은 자연과 정반대이다. 미술 작품은 오직 인간 내면 안에서만 나올 수 있다." 1890년대에 그는 <절규>를 비롯해서 <생의 프리즈> 연작을 그렸다. 이들 작품에는 고독, 노이로제, 죽음의 음울함 같은 주제에 대한 작가의 집착과 몰두가 드러난다. 사실 이들 주제는 21세기 미술가들도 여전히 관심을 보이는 내용들이다. 뭉크는 여성과의 관계에서도 문제가 많아서 여성을 항상 강렬하고 수수께끼 같은 피조물로 묘사했다. 그는 성에 적응하지 못하는 자신의 감정이 질투와 불안에 휩싸여 그림표면을 침식해 들어가는 것을 그대로 드러내곤 했다. 술과 복잡한 여자관계로 상당히 방종한 삶을 살았던 뭉크는 자 삶이 불행해지면 질수록 그림들을 더욱더 자전적으로 그렸다. 불안한 이미지와 왜곡된 형태를 더 심화시켜서 자신의 절박한 심리 상태를 드러내고자 한 것이다. 

뭉크 '태양' / 사진 위키미디어

 

한편, 뭉크의 작품 <태양>은 우울하고 절망적인 색채와 너무나 다르다. 뭉크는 봄의 첫 태양을 그렸는데 북극에 가까운 노르웨이는 여름에는 해가 떠 있는 백야 현상이, 겨울에는 해가 뜨지 않는 날이 며칠씩 이어진다. 작품 <태양>은 긴 겨울 끝에 마침내 맞이한 봄의 첫 태양을 표현한 것처럼 찬란하고 밝고 선명하다. 따뜻한 태양의 기운이 대지를 비추고 구석구석 빠진 곳 없이 모든 것을 비춘다. 이 작품은 노르웨이 오슬로 대학의 정면 벽에 그려져 지금도 강렬한 생명력을 불어넣어 주고 있다. 

 

사람들은 뭉크의 삶과 그의 작품에 흐르는 불안한 정서 때문에 그가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할 것이라 짐작했다. 하지만 뭉크는 수많은 생명을 앗아간 무서운 스페인 독감도 이겨낸 장수한 화가이다. 평생 병약한 몸이었고 죽음과 질병의 위협을 수없이 느꼈음에도 계속 작품 활동에 몰입했고 81세까지 장수를 누렸다. 스페인 독감에서 회복한 1919년, 뭉크는 자 모습을 그렸다. 무서운 병마가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 늙고 초췌해 보이는 모습이다. 담담히 정면을 바보는 뭉크는 '나 같은 사람도 살아남았다'라는 무언의 메시지를 던지는 것 같다. 살아 있는 동안 전 세계에서 작품을 전시하고 상도 거머쥐며 성공적인 경력을 쌓은 뭉크. 그가 제작한 동판화, 석판화, 목판화는 '다리파(Die Bruke)로 불린 독일 표현주의 운동의 전개에 큰 영향을 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