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ntent="user-scalable=no, initial-scale=1.0, maximum-scale=1.0, minimum-scale=1.0, width=device-width"> 분석심리학적(융 심리학) 미술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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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석심리학적(융 심리학) 미술치료

by 작달비100 2024. 7. 3.

분석심리학은 '융 심리학'이라고 볼 수 있다. 분석심리학은 칼 구스타프 융(Carl Gustav Jung, 1875~1961)의 연구에서 비롯되었으며, 정신분석학이라 불리는 프로이트 심리학과는 중요한 차이가 있다. 융은 1913년에 프로이트와 결별해 그때부터 자신만의 이론을 발전시켰다.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과 융의 분석심리학은 이미지를 대하는 태도에서 큰 차이가 있으며 이는 두 접근법을 구분하는 근본적인 차별 점이 된다. 프로이트와 마찬가지로 융 또한 방대한 저술을 남겼으며 그 저술에 관한 수많은 논란이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1. 분석심리학적 미술치료 모델의 발전사

위디미드(Withymead)는 영국 최초의 미술치료 공동체였다. 1940년대부터 1950년대에 영국에서 미술치료에 깊은 관심을 가진 사람들은 모두 위드미드에 대해 알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분석심리학적 미술치료의 발전사를 살펴보기 위해서는 당연히 위드미드를 먼저 살펴보아야 한다. 미술치료라는 별개의 직업이 탄생하던 시절에 분석심리학적 미술치료는 그 시기를 대표하는 이론적 스키마였다. 위드미드는 1942년 자발적으로 설립되었으며 이후 엑시터시티가 심하게 폭격을 받으 파괴되었으나 달리 돌아갈 곳이 없는 일부 환자들은 계속 남아있었다. 위드미드의 설립자 아이린챔퍼노운(Irene Champernowne)에게는 개인 치료실이 있었는데 당시의 심각한 전쟁 상황을 생각해 볼 때 그것은 매우 실용적인 발명품이었다. 챔퍼노운은 초창기 미술치료에 전문성을 부여했으며 국립정신건강협회가 주관하는 일부 연구에도 참여했다. 위드미드는 이 시기 영국에서 미술치료의 발전을 주도한 가장 중요한 기관이었으며 논란의 여지는 있지만 미술치료사라는 직업이 탄생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2. 이론의 축, 보상이론

융은 '마음속에서 억압된 것은 환자의 의식적 노력으로 배제되고 억제되지만 무의식 속으로 침전되어 의식과 정반대되는 것을 형성한다고 믿었다. 그는 무의식에서의 보상 행위란 의식에서의 불균형적인 성향을 균형 상태로 만들어주는 행위를 의미한다고 보았다. 그러므로 의식적 억압이 심해질수록 무의식적인 반발이 심해지는데 이는 언젠가는 결국 의식 속으로 뚫고 올라온다. 

 

무의식적인 반발은 의식적 성향이 강해질 때마다 강화되며 결국 의식적인 행동 자체를 방해한다. 그리고 무의식에서 억압된 것은 충분히 강화되어 꿈이나 자발적인 이미지나 증상으로 나타난다. 보상 작용의 목적은 두 정신세계를 잇는 가교 구실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 가교는 바로 상징이다. 상징은 의식적으로 그것을 인정하고 이해해야 보상 작용 효과가 발휘된다. 즉 상징이 효과적이려면 의식에 동화되고 통합되어야 한다. (Samuels et al. 1986)

 

상징이 두 정신세계를 잇는 가교 구실을 하면서 정신세계의 균형을 이루는 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 것으로 보아 상징에 대한 분석심리학의 관점은 긍정적이다. 콩스탕스 롱(Constance Long)은 융의 초기 연구의 주요 지지자로서 융의 무의식에 관한 관점을 설명하면서 '정신분석학에서는 상징이 소망 실현과 관련된 원시적 본능이라는 협소한 범위 안에서 작동한다고 본다. 반면 융은 상징, 즉 창의적인 마음이 가능하다는 보다 광범위한 범위에서 이루어지는 균형 잡기'라고 지적한다. 롱은 융의 분석심리학과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 차이를 설명한다. 프로이트의 관점에서 무의식은 소망의 실현을 제외한 어떠한 것도 알지 못하며 오직 '원시적 성향'을 보일 뿐이다. 반면 융의 관점에서 꿈과 신경증을 포함한 모든 정신적 현상은 정신적 에너지 혹은 리비도(생명 에너지)의 발현이다. 무의식은 중요한 정보를 제공하며 '의식의 일방성'을 보상할 수 있다고 여겨졌다. 위드미드 공동체에서는 직관형, 감정형, 사고형 등 사람의 성격 유형에 관한 연구도 이루어졌다. 이 연구에서는 전체 성격 중에서 덜 의식적인 부분이 꿈이나 미술작품에 나타날 수 있다고 했다. 융은 자기의 무의식적인 부분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건강을 위한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만일 억압되지 않았더라면 무의식은 자아를 적절히 규율하는 기능을 수행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3. 기저 이론, 집단적 의미와 상징주의 

초기 분석심리학 미술치료사들은 상징의 의미에 관한 연역적 해석을 거부했다. 비록 일반적인 상징을 원형적(보편적으로 나타나는 신화적 이미지를 담고 있는 것)이라고 여기긴 했다. 그러나 프로이트와 융은 모두 상징의 집단적 의미에 관해 고찰했다. 프로이트는 초기 정신 분석학 연구에서 이에 관한 수많은 교조적 해석을 남겼으며 이 해석은 연역적 가정에 기반을 두고 있었다. 상징이 문학적 맥락에서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생각은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합리적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일부 이론가들은 집단무의식의 의미를 너무 확대해 사용하는 경향이 있다. 상징적 물질이 원형의 의미를 증명한다고 여기지 않았던 챔퍼노운은 이미지에서 문자 그대로의 '의'와 '개인적인 의미'를 밝혀내려고 지속해서 노력했다. 그러므로 챔퍼노운이 '융과 분석자인 토니 볼프(Toni Wolff)를 모두 납득시키는 데 성공한 것을 사소한 사건으로 받아들여선 안 된다. 챔퍼노운은 두 사람에게 자신의 그림이 자신과 볼프 사이에 존재하는 무의식적인 부분을 나타내는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납득시켰다. 융은 미술작품 속 상징의 원형적 속성에 관한 생각과 확충 이론을 재고하려고 했다. 확충 이론은 융의 상징 해석 방법론으로 상징의 개인적 맥락을 신화적 주제들과 연관 지음으로써 은유적 상징의 의미를 보다 명확하게 만드는 것을 말하는데 경우에 따라 이러한 확충 작업이 적용되지 않을 수도 있음을 인정했다는 의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