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ntent="user-scalable=no, initial-scale=1.0, maximum-scale=1.0, minimum-scale=1.0, width=device-width"> 미적 인식의 발달과 미적 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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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적 인식의 발달과 미적 교육

by 작달비100 2024. 6. 30.

1. 미적 인식의 의미

미적 발달은 창의적 발달과 분리되지 않는다. 둘 다 전체의 성장 과정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으며 개성을 다르게 하는 환경의 많은 변인들에 영향을 받는다. 보다 넓은 관점에서 보면 미적 교육(aethetic education)은 미술 형태의 창조를 포함하여 미술에서의 방대한 경험 스펙트럼을 다루는 것이다. 그것에 대한 어떤 정의는 미술과 자연에 대한 이해와 관찰을 포함하며 아름다움이라 부를 수 있는 자연에 대한 것이다. 그러나 좁은 관점에서 미적 인식은 미술 지각과 감상에 관련되어 있다. 미적 인식의 발달은 보통 부분들의 조화로운 구성으로 보고 있으며 이러한 구성은 성장에서의 변화와 마찬가지로 나이에 따라 변한다. 미적 인식은 감정적인 인식과 거의 관계가 없으며 사실적인 지식의 축적과도 관계가 없다. 미적 인식은 능동적인 지각 과정이다. 그것은 개인과 자극적이고 조화로운 경험을 제공하는 대상과의 상호작용이다. 미적인식은 환경에 대한 사람의 비사실적이고 비 객관적인 반응으로서의 사고이다. 그처럼 미적 인식은 각자의 본성을 발견하기 위한 시도이다. 신념과 가치의 문제는 지식에 우선한다. 미적 인식의 발달은 미술교육의 기본 영역이다. 성장은 계속 변화하는 연속적인 과정이며 미적 인식의 영역도 마찬가지이다. 미적 성장에서는 사고능력의 체계와 지각 능력의 발달, 정서 능력 등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미적 성장에는 규칙이 없다. 미적 교육은 학생이 만든 미술작품에 대한 교사의 비평이나 지도에 의해 단순하게 일어나지 않는다. 그것은 훨씬 범위가 넓은 일이며 미술작품을 제작하기 위한 원칙이 규칙을 학생들에게 알게 하는 것과는 별로 관련되어 있지 않다. 그런 문제는 학생들이 그들 자신의 미술작품과 다른 사람의 미술작품에 관하여 발달시켜야 하는 이해의 부분으로 간주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은 개인에게 쉽게 적용할 수 있는 일련의 규칙이 아니며 미적 성장은 광범위한 규칙 적용에 의해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미적 인식의 발달은 지각적, 지적, 정서적 경험에 대한 감수성을 교육 그런 경험들이 조화롭게 구성된 전체로 통합되고 심화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2. 미술 감상

우리의 논의와 밀접하게 관련된 것은 미적 인식의 발달에서 미술 감상이 담당하는 역할이다. 취향의 문제를 논의할 때 제일 먼저 취향이 학습되는 것이냐는 문제가 제기된다. 학생들이 선택하는 능력이 발달하면서 미술적 권위에 의해 설정된 어떤 준거에 바탕을 두고 우리는 그런 준거가 좋은 취향을 발달시킨다고 생각한다. 고등학교 학생들을 충분히 격려하고 적절한 지도를 받으면 선택하는 감각이 발달한다. 이런 것들은 미적 인식과는 거의 관련이 없다. 우리의 취향은 명백하게 각각 다르지만 그것은 좋은 것으로부터 나쁜 것까지의 범위로 배열하는 판단 능력이 아니다. 교육받지 않은 사람은 틀림없이 취향과는 거의 관계가 없다고 여기므로 좋은 취향이란 보통 미술 평가가 선택하는 것으로 정의하는 사람도 있다. 물론 취향은 문화와 연결된다. 분명히 우리는 할머니가 귀중하게 여겼던 것을 똑같이 귀중하게 여기지 않는다. 각 시대는 모두 고유의 특성이 있으며 그러한 문화적 차이는 좋은 취향을 위한 규칙을 확립하여 점차로 규격화시킨다. '아름다운 것은 영원히 좋은 것이다'라는 말은 급격히 변하는 오늘날의 문화에 대해서는 거의 들을 수 없는 말이다. 이러한 검토보다 중요한 것은 어린이들이 성인들의 방법으로 환경을 바라보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한 단계의 아동화는 다음 단계의 것과 상당히 다르며 그것들이 각 단계의 작품들을 다양하게 감상해야 하는 이유가 된다. 10살 어린이는 대개 박물관에 걸려 있는 회화작품보다 자신에게 훨씬 의미 있는 돌이나 개구리 그리고 다른 잡다한 물체에 대해 자연스러운 감상 능력을 발달시킨다. 

3. 문화와 미적 인식

미술은 그것이 만들어진 사회의 모습과 가치를 그대로 드러내는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오늘날 우리는 과거 사회의 미술 형태와 유물들을 소중히 여기고 이것으로부터 이러한 형태에서 발견되는 각 사회 모습에 대한 결론을 끌어내고 있다. 그리스 사원은 고딕 성당과 매우 다르지만 이러한 각 형태를  그 당시의 문화를 표현하여 대표하고 있다. 그런데 고 성당 양식은 1000년을 지나서도 교회와 고등교육기관 등에 적용되고 있다. 이런 고딕식 건축물들은 고딕 성당처럼 보이도록 꾸미고 가장한 위장 건축물들이다. 그리스 사원 역시 약간 변화를 주긴 했지만, 정부 기관 건물 등에 적용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건축물은 재현이 아니라 이런 건축을 그들 사회의 중요한 부분으로 생각했던 과거 문화를 복사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과거 시대의 대표적인 건축에서 통치 형태를 알 수 있다. 틀림없이 인류학자는 어떤 방에서 다른 방으로 옮겨가는 것만으로 사람이 한 세기로부터 다른 세기로 걸어갈 수 있는 어떤 이상한 사회가 있었다고 생각할 것이다. 분명히 이러한 가정의 현 거주자들은 문화 자체에 나타나 있는 불안정성과 도식적인 양상을 인식하지 못한 채 수용해 왔다. 그나 레인지, 냉장고, 접시 닦는 기계가 가장 최근에 디자인된 것을 보고 과학은 분명히 중요한 요소였다고 생각할 것이다. 인류학자는 이런 가정의 거주자들을 의미 없는 부활한 양식의 세계로 도피한 정신분열증으로 진단할지도 모른다. 인류학자는 대개 우리 사회의 이런 현상을 이해할지도 모른다. 이것은 미학적인 질문이 아니다. 왜냐하면 박물관에 있는 우리 미술은 우리 시대 미술가들이 자신들이 살았던 사회에 등을 돌리는 사고를 옹호하기 때문이며 자신들이 살고 있는 사회를 야유하거나 너무 자기중심적이고 개인주의적이어서 그들도 역시 자신들의 사회와의 접촉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